직류 전원 수요의 증가
“전류의 전쟁(War of Currents)”은 송전과 배전 기술 역사에서 가장 격렬한 논쟁 중 하나로 역사에 남아 있다. 1880년대 후반 미국에서 벌어진 이 논쟁은, 직류(DC)와 교류(AC) 중 어느 쪽을 표준 송배전 시스템으로 채용할지를 둘러싼 치열한 주도권 싸움을 가리킨다.
논쟁은 교류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모든 논쟁에서는 그 배경을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직류나 교류 하나를 선택해야 했던 당시는 전력 생산과 전력 소비의 지리적 위치가 중요했다. 변압 기술이 부족했던 직류에 비해, 교류는 유연하게 전압을 바꾸는 변전(변압) 기술이 확보되어 있었다. 덕분에 발전소를 전력 소비 지역에 가까이 지을 필요 없이 원하는 곳에 건설할 수 있었던 교류가 승리를 거두었다. 즉, 송배전 시스템이 의사 결정의 핵심 기준이었던 것이다.
전류의 전쟁으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현재, 교류에 밀려 한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직류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 에너지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신재생에너지의 빠른 성장으로 인해 전력 생산지와 전력 소비지 사이의 거리가 더욱 멀어지면서, 송배전을 다시 생각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게다가 분산발전이나 에너지 저장장치(축전지) 등 직류 전원(電源)의 수요도 급속히 증가했고, 직류 전원을 소비하는 정보통신 부하가 크게 늘어났다. 즉, 기존 발전 시스템에 직류 발전 인프라가 급속하게 추가되고 있는 실정이다.
오히려, 이런 현실에서 오히려 직류가 더 나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직류 송전은 전력을 수송하는데 있어 가공전력선(Overhead line) 방식보다 전력케이블(Cable)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송전의 새로운 대안이 되고 있는 고압직류송전 (HVDC)이란, 발전소에서 생산되는 고압의 교류전력을 전력변환기를 이용해 고압의 직류전력으로 변환시켜 송전한 후, 원하는 수전(受電) 지역에서 다시 전력변환기를 이용해 교류전력으로 변환하여 공급하는 방식이다. 이런 배경에서 고압직류송전(HDVC)이 경제적으로 의미 있는 대안으로 부상했다.
직류 전력망에서 전력 생산과 전력 소비의 직접 연결
지리적 입지를 볼 때 신재생에너지원은 전압형 컨버터(VSC)에 기반한 HVDC 그리드를 통해 전력수용 가정과 직접 연결될 것이다. 북해의 풍력발전이 영국과 스칸디나비아 지역까지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중부 유럽까지 연결되는 방안이 고려되고 있다. 미국 대서양 연안 지역에 위치한 해상 풍력발전은 미국 동부 지역으로 연결된다.
신재생에너지 발전과 HVDC
태양광 발전과 에너지 저장장치(축전지)는 모두 직류를 출력한다. 태양광으로 발전한 전력을 판매하지 않고 축전지에 저장한 후, 자가소비하면, 직류로 작동되는 전기 기기는 현재처럼 교류로 변환하지 않고 직류 그대로 이용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직류-교류 변환에 따른 전력 손실을 줄일 수 있다. 재생에너지의 가격 정책에 따라 자가소비의 경제성도 높아질 수도 있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매입 가격 하락에 따라 태양광 전기를 축전지에 저장하여 활용하는 가정과 사업자가 늘고 있다.
심지어는 규모가 큰 사업장에서도 태양광의 직류 전류를 직접 최종 부하에 활용하는 사례도 등장했다. 일본에서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사쿠라 인터넷은 2015년 8월, 홋카이도 이시카에 출력 200kW규모의 태양광 발전소를 가동했다. 사쿠라 인터넷이 태양광 발전의 직류를 그대로 활용하는 시스템을 도입한 이유는 이미 이시카 데이터센터에 고압직류송전 시스템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즉, HVDC 시스템을 사용하면 상용 교류전원을 사용할 때와 비교하면, AC/DC 변환이 기존 3회에서 1회로 줄어 전력 사용의 효율을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신재생에너지 발전이 기존의 직류송전시스템과 융합되는 것은 전력 효율성을 고려할 때 사업성이 높다.
HVDC 기술의 새로운 미래를 견인하는 GE
직류 시스템의 장점이 인정받게 되었다 해도, 모든 교류 시스템을 당장 직류로 변화시키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이미 구축된 수많은 전력 설비를 교체하기 위한 비용과 시간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직류 시스템과 교류 시스템은 함께 공존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여러 측면에서 장점이 많은 직류가 대세라는 점은 확실한 추세이며, 세계 유수의 기업들도 직류 기술 개발에 몰두 중이다.
GE와 알스톰의 통합으로 새롭게 출범한 GE그리드 솔루션은 기존의 교류망을 개선하고 다시 건설하는 분야에서 선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첨단의 전력전자 기술을 활용하여 교류-직류망을 연결하고, 전력원이 수력이든 화력이든 관계없이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GE그리드 솔루션 기술을 기반으로 지난 1997년 해남-제주간 300메가와트급 제1 HVDC를 구축한 데에 이어 2014년 양방향 전력 송전이 가능한 400메가와트급 제 2 HVDC를 구축했다. 2012년 12월에는 한국전력과 GE그리드솔루션이HVDC 기술 협력을 위한 조인트벤처 KAPES를 설립했고, 핵심기술 이전 사업자로 LS산전을 선정하며 사업에 가속도가 붙었다. KAPES는 이듬해인 2014년 총 사업비 3,180억 원 규모의 충남 북당진-평택 고덕간 HVDC 구축을 위한 계약을 체결하고, 2018년 완공을 목표로 사업을 진행 중이다. 글로벌 HVDC 시장은 오는 2020년까지 730억 달러, 2030년까지는 1,43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도 중부 지역의 전력 사업자 파워그리드(Power Grid Corp)는 발전량의 50%를 인도 전역에 걸쳐 송전하는데, 송전 길이만도 9만 5,329km에 달한다(2012년 7월 기준). 인도의 발전량은 매년 급격히 증가하고 반면, 송전량은 발전량을 감당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북부와 남부, 동부 지역의 증가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급증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파워그리드는 GE그리드솔루션과 협업으로 인도 중부의 참파(Champa) 지역에서 1,365km 떨어진 북부의 쿠루쉐트라(Kurukshetra) 지역까지 3,000메가와트를 송전하는, 인도 최초의 800kV 초고압 직류송전 시스템을 구축했다. 인도의 청정 에너지 하이웨이를 성공적으로 구축한 것이다(일반적으로 송전 거리가 700km를 넘으면 직류 송전이 유리함).
전망과 시사점
컴퓨터나 가전제품부터 산업용 인버터와 향후 대량으로 보급될 전기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우리 일상에는 직류를 이용할 때 더 효율적인 경우가 많다. 태양광, 연료전지, 에너지 저장장치(ESS) 등 다양한 신재생에너지원일 때는 직류가 더 적합하고 효율적이다. 현재의 전력 시스템을 교류 중심에서 직류 중심으로 바꾸고자 하는 노력은 송배전 분야를 넘어 건물과 가정 내부 시스템에까지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앞으로 직류 중심의 전력 시스템이 일반화되면 미래의 전력 분야에는 많은 변화와 새로운 발전 모델이 생겨날 것이다.